동해안의 역설 : 가뭄의 강릉과 워터밤의 속초
동해안은 동일한 해안선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두 도시, 강릉과 속초가 전혀 다른 물 사정에 직면하고 있다. 강릉은 매년 반복되는 가뭄으로 인해 식수난을 겪으며 주민들이 제한 급수를 경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면 속초는 ‘워터밤’과 같은 대규모 물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수자원이 풍부한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기후 요인이나 강수량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실제로 두 도시는 지리적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연평균 강수량에서도 큰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자원 관리 체계, 특히 지하댐 건설 여부가 두 도시의 상반된 현실을 만들어낸 핵심 요인으로 주목된다.
본 글은 지하댐이라는 인프라의 특성과 효과, 강릉과 속초의 지리적·사회적 맥락, 그리고 한국 수자원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여, 지역 간 수자원 격차가 어떻게 형성되고 확대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워터밤 속초’와 ‘가뭄 강릉’이라는 아이러니한 대비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술적 선택과 정책적 투자, 그리고 지역 사회의 전략적 대응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지하댐의 구조와 속초의 안정적 수자원 확보
속초가 수자원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지하댐 건설에 있다. 지하댐은 하천이나 하상(河床)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를 막아 저장하고 활용하는 구조물로, 일반 댐과 달리 대규모 저수지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 방식은 수몰 지역이 발생하지 않고, 증발 손실이 거의 없으며, 안정적으로 지하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기에도 수자원을 잉여 저장하고, 겨울철 강수량이 부족한 시기에도 일정 수준의 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초와 같은 도시에는 최적의 대안이었다.
속초 지하댐은 국내에서도 선도적으로 도입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시설은 지역 주민의 생활용수뿐 아니라 관광객 증가에 따른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속초가 워터파크, 워터밤 등 물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문화 행사 개최에 적극적일 수 있는 것도, 지하댐이 제공하는 안정적 수자원 공급 능력 덕분이다. 이는 속초가 단순히 자연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인프라적 투자와 정책적 결단을 통해 물 자급 체계를 확립했음을 보여준다.
강릉의 가뭄 문제와 수자원 관리의 한계
반면 강릉은 풍부한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가뭄을 겪고 있다. 강릉의 주요 하천은 유량이 계절적으로 불안정하고, 지형적 특성상 물이 빠르게 바다로 흘러가 저장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강릉은 속초와 달리 지하댐과 같은 안정적 수자원 확보 시설을 제때 도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강릉은 지표수와 일부 지하수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극심한 가뭄기에는 제한급수나 급수차 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강릉의 가뭄은 단순한 ‘자연적 가뭄’이 아니라 ‘구조적 가뭄’이라 불릴 수 있다. 구조적 가뭄이란 강수량 자체보다는 물을 저장·분배·활용하는 시스템의 부재로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강릉의 경우 물 관리 인프라의 투자 지연, 수자원 정책에서의 지역적 소외, 그리고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수요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가뭄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강릉이 커피축제나 해양관광을 중심으로 한 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물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이를 감당할 시스템 구축은 속초에 비해 현저히 뒤처졌다.
수자원 불균형의 사회·정치적 함의
속초와 강릉의 대조적 현실은 단순한 지역 간 물 관리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이 차이는 지역 불균형 발전과 직결되며, 주민 삶의 질, 지역 경제,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속초는 안정적인 물 공급을 기반으로 관광산업을 확장하고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도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반면 강릉은 반복되는 제한급수와 가뭄 보도로 인해 ‘물 부족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투자 유치, 관광 활성화,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도 장기적인 불리함을 초래한다.
또한 이러한 불균형은 국가 수자원 정책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될 수 있다. 특정 지역에는 지하댐이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집중되고, 다른 지역은 제때 적절한 대안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는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불만을 야기한다. 따라서 강릉과 속초 사례는 단순한 수자원 관리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권력 불균형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지하댐이 남긴 교훈과 지역 균형 발전의 과제
속초가 워터밤을 열 수 있는 도시가 된 이유는 단순히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지하댐이라는 기술적 선택과 정책적 투자 덕분이었다. 반면 강릉이 반복적으로 가뭄을 겪는 이유는 수자원 관리 인프라의 부재, 정책적 소외, 그리고 지역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대비는 한국 수자원 정책이 기후 변화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앞으로 한국이 직면할 기후 위기와 가뭄·홍수의 반복적 발생 속에서, 수자원 불균형 문제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따라서 지하댐과 같은 대체 수자원 확보 기술의 전국적 확산, 지역별 맞춤형 수자원 관리 전략 수립, 그리고 정책적 자원의 공정한 배분이 요구된다. 강릉과 속초의 대비는 단순한 지역 차이를 넘어, 기술 선택이 미래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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