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는 조언자인가, 의사결정자인가?
GPT는 스스로 ‘정보 제공 도구’ 또는 ‘보조 시스템’임을 명시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 다수가 이를 실질적인 의사결정 보조 수단 또는 권위 있는 조언자로 받아들인다. 특히 의료, 법률, 교육과 같이 전문성이 요구되며 인간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분야에서는, GPT의 한 문장이 치료 방향을 바꾸고, 법적 대응을 결정하며, 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때 GPT의 응답 오류가 실제 피해로 이어질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현재 GPT는 기술적으로 ‘예측 기반 텍스트 생성 모델’로 규정되며, 법적으로는 사용자 입력에 따라 결과를 반환하는 비의도적 알고리즘 시스템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GPT가 전문가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객관적 문헌을 인용하고, 확신 있는 어조로 설명하는 순간 ‘책임 회피의 허구’를 드러낸다. 특히 사용자가 해당 분야에 대해 비전문가일 경우, GPT의 응답은 사실상 ‘결정적 조언’으로 기능하게 된다. 예컨대 “이 약물 복용해도 되나요?”, “계약서 이 문구 위험한가요?”, “이 대학에 지원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GPT의 답변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실질적 판단 유도로 작용한다.
GPT 제공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이용약관을 통해 “응답은 법적, 의학적, 교육적 조언이 아니며, 전문가와 상담하라”라고 명시하지만, 이는 법적 면책 구조를 위한 수단에 가깝다. 실제로 GPT의 응답은 사용자에게 권위적인 언어 구조, 객관적 문헌 인용, 사례 제시, 명확한 결론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인지구조상 ‘권위에 대한 수용 경향성(heuristic trust)’을 유발한다. 결과적으로 GPT는 스스로 책임지지 않지만, 책임을 유도하는 언어 구조를 통해 실제 책임을 초래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는 ‘기술적 책임 없음’과 ‘사회적 영향력 존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법적 회색지대를 만들어낸다.
의료분야: 증상 검색부터 진단 조언까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의료 분야는 GPT의 잠재적 책임 범위가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GPT는 질병 증상 분석, 약물 정보 설명, 생활습관 개선 조언, 의학 논문 요약 등의 형태로 이미 의료 정보 제공 시스템에 통합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간단한 건강 상담 플랫폼에 GPT를 내장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GPT를 통해 “이 증상이 어떤 병의 가능성이 있나요?”, “이 약을 이 약과 함께 복용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매우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답변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응답이 비전문가 사용자에게는 사실상 ‘진단적 결정’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특히 응급 상황이나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GPT는 의료인의 대체물로 작동하며, 이로 인해 오진, 복약 사고, 치료 지연 등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미국에서는 한 사용자가 GPT에게 심장 통증 관련 질문을 던졌고, GPT는 단순한 소화불량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이 사용자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가족이 이를 법적 문제로 제기하며 “AI가 왜 그렇게 말했는가”를 다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사례는 GPT가 어떤 법적 지위도 가지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는 의료 조언자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GPT는 의학 논문, 백서, 전문 웹사이트 등 권위적 출처를 인용하며 사용자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에, ‘정보 제공’의 경계를 넘어 ‘설득력 있는 조언자’로 전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응답은 실제 환자의 병력, 알레르기, 약물 내성, 심리상태, 병력 연관성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오류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료 영역에서 GPT의 응답은 ‘허용 가능한 정보 제공의 한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라는 윤리적·법적 과제를 제기한다. 현행 제도는 의료인이 아닌 주체가 진단 행위를 하면 ‘불법 의료 행위’로 간주하지만, GPT는 의사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비인격적 기술 주체이므로 이 법 적용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이용자 약관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사용자는 스스로 피해를 감수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지점은 향후 AI 의료 응답에 대한 법률적 책임 귀속 제도화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법률분야: “소송 가능성 있나요?”라는 질문에 AI가 답할 때 생기는 위험
GPT는 점점 더 많은 사용자의 법률 정보 검색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계약서 검토, 민사소송 절차 안내, 형사책임 범위 설명, 이혼 조건 정리 등 법률 행위와 연결된 다양한 질문에 대해 GPT는 빠르고 명확한 언어로 응답한다. “이 조항 유리한가요?”, “이 상황에서 고소 가능한가요?”, “합의하면 형량 줄어드나요?”와 같은 질문에 대해 GPT는 확신에 찬 문장을 만들어내며, 경우에 따라 판례 번호, 법령 조항, 법무부 문서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조는 사용자에게 GPT를 사실상 ‘디지털 변호사’로 오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률 행위는 인간 사이의 분쟁과 권리 보호를 다루는 고도로 복잡한 절차이며, 그 판단에는 수많은 변수, 관습법, 판례 해석, 지역 관행 등이 작용한다. GPT는 단지 데이터 기반 통계적 언어 모델일 뿐, 개별 사건의 감정적 맥락, 정황 증거, 당사자 성격, 재판부 성향 등을 반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PT는 매우 권위적인 말투로 ‘법적 해석’을 제시하며, 특히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개인들에게는 GPT의 말이 곧 ‘법적 조언’이 되는 현실이 형성되고 있다.
2024년, 유럽에서는 한 스타트업이 GPT를 탑재한 ‘법률 챗봇’을 중소기업 대상으로 제공했다가, 계약 해석 오류로 인해 기업이 손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용자는 챗봇의 안내를 따라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이후 조항 해석 문제가 발생하며 법정 분쟁으로 비화되었고, 결국 “AI가 잘못된 법률 정보를 제공했다”는 책임 소재 논쟁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GPT의 법률 조언이 실질적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과, 그 책임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보여준다.
법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GPT의 응답이 ‘비공식적 조언’인지, ‘실질적 유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법률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GPT의 단순 설명에도 ‘따라야 할 가이드’로서의 신뢰를 부여한다. 결국 GPT는 법률 조언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조언자처럼 말하는 위험한 권위의 모방자가 되어버린다. 이로 인해 법률 기술 시장에서는 ‘AI 조언에 의존한 사용자의 피해 발생 시 책임 귀속 구조’에 대한 새로운 법제화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교육분야: 인공지능 튜터가 학습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과 책임 경계
교육 분야에서 GPT는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에세이 초안 작성, 수학 문제 풀이, 논문 개요 설계, 진로 조언, 학습 피드백, 자격증 시험 대비까지 GPT는 사실상 ‘개인 맞춤형 디지털 튜터’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생성형 AI를 보조 학습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GPT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인지 구조와 학습 패턴 형성에 직접 개입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GPT가 전달하는 정보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학습 방향과 사고방식 자체를 어떻게 유도하는가에 대한 책임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이 GPT에게 “이 주제로 대학 자소서를 써도 괜찮을까?”라고 물었을 때, GPT가 특정 방향의 글쓰기나 소재를 추천하면, 이 학생은 AI가 ‘옳다고 한 방식’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게 된다. 더 나아가, 특정 사회 이슈나 민감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GPT가 편향된 시각으로 사고 구조를 구성할 경우, 그것은 단순한 정보 오류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저해하는 구조적 편향 유도가 될 수 있다.
또한, GPT는 학습자의 수준, 정서 상태, 문화적 배경, 언어 능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응답을 제공한다. 그 결과, 학생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반대로 생각의 깊이를 얕게 만드는 방향으로 피드백을 반복할 수 있다. 이는 ‘AI 튜터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교육적 판단 오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저학년 학생이나 교육 소외 계층일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처럼 GPT의 응답은 단지 “정보 제공”을 넘어, 학습자의 인지 과정 자체를 설계하는 언어 구조로 작용하게 된다.
현재 교육부나 각국의 교육청, 대학 등은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지침을 발표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표절 방지’ 또는 ‘부정행위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진짜 쟁점은 GPT가 어떤 방식으로 학습자에게 사고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가이다. 교육적 판단 오류가 장기적으로 진로 선택, 가치관 형성, 사회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GPT의 교육적 발화에 대한 책임 범위와 플랫폼의 사전 감시 체계는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설득할 때, 책임은 인간 너머로 확장된다
의료, 법률, 교육이라는 고위험 분야에서 GPT가 사용되며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GPT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향력은 권위자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사용자는 GPT의 응답을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 기준’으로 채택한다. 이는 GPT의 언어 구조가 명확한 주장, 인용, 명료한 문장 종결형을 통해 “정답을 말하는 존재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사용자의 인지 심리와 결합해,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제는 기술 개발자와 플랫폼 운영자 모두가 GPT 응답 구조의 사회적 책임성을 설계 수준에서 재구성해야 할 시점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제도적 방향이 요구된다.
1. GPT 응답 구분 라벨링 의무화 – 고위험 분야의 응답에는 “의료 조언 아님”, “법적 조언 아님”, “교육 판단 아님” 등의 강제 문구 삽입 및 시각적 강조 UI 설계가 필요하다.
2. AI 응답 책임 공유 시스템 구축 –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GPT 응답 기록을 기반으로 한 책임귀속 조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플랫폼은 이를 위한 API 로그, 토큰 처리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3. 영역별 전문가 공동 설계 의무화 – 의료, 법률, 교육 GPT는 반드시 현직 전문가의 자문 및 시나리오 리스크 모델을 포함해 설계되어야 하며, 정기적인 검토와 업데이트가 정책적으로 요구되어야 한다.
4. 사용자 보호를 위한 GPT 발화감도 조절 옵션 제공 – 사용자는 응답의 확신 수준, 표현 강도, 근거 제공 방식 등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특히 결정에 예민한 응답에 대한 사용자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기능이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GPT를 단순한 기술 도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GPT는 ‘결정에 개입하는 언어 구조를 제공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 응답 하나하나가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사용될 수 있다. 책임의 문제가 기술을 뛰어넘어 철학과 제도로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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